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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금강 [공원벤치가 견뎌야 하는 상실의 무게] 대전연극 대전공연 소극장 커튼콜

제로아트 2019. 5. 16. 17:37


극단 금강 [공원벤치가 견뎌야 하는 상실의 무게]

2019 예술지원공모(예술창작지원) 선정작


2019년 6월 11일(화) - 23일(일)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4시, 월요일 쉼

소극장 커튼콜(대흥동)


문의: T.010-7326-1095

 


전석 20,000원

온라인 사전예매(50% 할인 _ 10,000원)

네이버 예매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21880/items/3062087

인터파크 티켓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9007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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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 _ 신성우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거짓’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슬픔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슬픔을 느낀다고 해서,

나의 슬픔 자체가 반으로 줄어들 논리적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슬픔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이’되어,

감염자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일 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슬퍼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과연 사회 전체로 볼 때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슬픔은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되는 순간, 종종 그 강도도 줄고 초점도 흐려지게 됩니다.

아무리 깊이 이해해준다 해도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느끼는 슬픔은 당사자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이것이 당사자의 냉소를, 더 나아가 분노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기쁨을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슬픔을 공유하는 것도 나와 다른 사람을 이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들과 기능적으로 조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불완전하다고 할지라도 공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회적 비극에 대한 공감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는 삼풍백화점 사건에서부터 세월호 사건까지

우리는 유가족들이 느낀 상실의 무게를 온전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꾸역꾸역 작은 슬픔의 조각이나마 가슴에 품고,

또 그걸 옆으로, 옆으로 전이시키려하는 것은

그 슬픔의 조각들이 우리 사회를 하나로 이어주는 접착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나’나 ‘너’가 아니라 ‘우리’를 주어로 내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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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 글 _ 임은희

 

슬퍼하는 거와
슬픈 거


우리는 언제든지 슬픈일을 당한다.
부모님이든 친구든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한 동안 슬픔에 젖어있곤 한다.
나도 역시 그런 일들을 겪었었다.
부모님
친구
나는 슬퍼했던건가?

슬펐던가?

 

구 남녀는 어떻게 슬픔을 겪고 이겨내려 하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을 어떻게든 견뎌내야 한다.
다들 다른 방법으로 슬픔을 이겨낸다.
슬픔을 견뎌내려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이다.
같은 방식으로 또는 다른 생각으로
그녀는 슬퍼하려 한다.
때로는 슬퍼하지 않으면 자책감이 생긴다.
오랫동안 슬퍼하기 위하여 그는 슬프다.
그냥 슬프다.
어쩌면 곧 안 슬퍼질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철학적이다.
단순히 벤치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서 공원벤치가 견뎌야 한다.
상실의 무게를...